신광조 대표(사실과 과학)
신광조 대표(사실과 과학)

▢이제 생각해 보아야 할 한국인의 ‘행복’

지금 한국인은 행복할까?

어디로 가야 할 방향을 잘 정하고 있을까?

행복에 관한 지표는 소득 수준을 못 따라가고 있고, 설령 소득수준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행복지수는 비례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엉뚱하게 똥 볼을 지른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 부탄, 네팔 열풍이 불었다.

히말라야를 배낭을 메고 수염을 기르고 오르지 않으면 지성인 축에 안 드는 것 같았다.

부탄은 미국의 돈 많은 사람들이 자비를 베풀 대상이지, 우리가 부러워할 나라도, 사람들이 행복한 나라도 아니다.

유아사망률이 가장 높고, 문맹률이 50% 정도다.

부탄과 북한은 ‘마취’의 나라다.

그러니까 우리가 행복한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잘 극복해야 하지만, 새로운 도피나 마취를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사적 소유를 철폐하여 자본주의 근간을 휘둘려서도 안 된다.

사회주의는 대안이 아니었다. 이미 경험했다.

▢ ‘신자유주의’가 확실한 대안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공동체 정신의 부활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고, 자연에 대해 경건한 예의를 차리자는 사람도 있고, 경천애인 정신의 재림을 논의하는 사람도 있고, ‘홍익 사상’을 꽃피우자는 사람도 있고, 반지성주의 타파를 외치는 사람도 있고, ‘라이 파시즘’을 외치는 분도 있고, 얼마 전 소개한 유대교 티쿤올람을 주창하는 분도 있고, 생명 자본주의를 외치는 분도 있다.

다 맞고 다 틀리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대립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자본주의 와 탈 자본주의 대립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가장 어려운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쳐야 한다.

‘더 나은’ 사회가 무엇인가? ‘더 좋은’ 삶이 무엇인가? 가능성을 확대하는 삶은 과연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있어야 하고, 사회적 대합의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를 폐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몇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국가나 정부가 개입하여 뒤떨어지는 자를 보호하고, 강자의 지나친 독식을 막아내고, 미래 지구의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해 환경을 보전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버렸던 사회주의에 혹시 쓸 만한 것이 있는가 하고 찾아보았다.

이 사회주의 친구들은 이미 고민했을 것이라고 보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장미를 찾는 듯 흥분했으나 쓰레기는 쓰레기였고, 걸레는 빨아도 걸레였다.

사회주의도 그리고 또 이데올로기도 종언을 했다.

▢자본주의 경제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을 위해 최고로 유효한 제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이론이 설명하듯 ‘한계효용 체감’과 ‘대량생산 비용 감소 역전의 법칙’이 적용되게 되었다.

경제란 게 별개 아니다. 경세제민이다.

나와 우리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을 조달하는 행위다.

경제의 제일 원칙인 ‘최저 투입 최고 효과의 효율성’은 사실을 경제학자들이 설명하기 위한 형식적 논리다.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지만, 사람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하는 논리다.

우리 모두는 잘 된 것은 잘 된 대로 잘못된 것은 잘못된 대로 솔직 담백하게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모든 가치를 하나로 환원할 수는 없다.

나는 결코 자본, 돈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담배를 살 돈이 없어 글이 써지질 않을 때 돈의 위력을 절감했다. 담양 금성산성을 헤매다 세 시간이나 늦게 찾은 돼지

국밥 식당의 국밥 한 그릇은 지상의 낙원이었고, 신이 준 선물이었다. 꿀맛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난 뒤 주머니에 지불하여야 할 국밥 값이 없었다.

나는 죄인처럼 식당 아주머니에게 나의 가련한 신세를 고백했다. 그리고 시계를 맡겨 놓겠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Never Mind!"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에게는 구원의 천사였다.

들를 기회 있으면 갚아도 된다고 하셨다.

▢최소 투입 최대 효과 원칙에서, 돈이 중요하다는 경제의 원칙을 절감하고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살다가 살다가 ‘생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나는 광주광역시청 초대 환경생태국장을 지냈다.

지금까지 관에서는 쓰지 않았던 ‘생태(Ecology)' 단어를 끝까지 고집해서 명찰에 부치고 환경부장관에게도 생태환경부로 고치도록 건의하는 장문의 편지도 썼다.

이것은 내가 국토 땅 끝 해남 시골에서 풍뎅이나 방아깨비, 달이나 별만을 친구하며 자란 숭 악 한 촌놈이도 하였지만, 자연을 착취해 이득을 취한 개발은 언젠가는 비용을 지불한다는 실질 경제에 관한 관점이 컸다.

인간은 자연에게 경건한 예의를 차리지 않는 한, 반드시 대가를 지불했다.

내 세대냐 다음 세대냐가 문제였다.

이것은 내가 정의보다 우선 시하는 ‘양심’의 문제다.

우리는 지금 세 가지 ‘왜곡’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포이어바흐의 소외론에 착안하여 자본주의를 강타한 제일 이론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다.

이제 한국의 지성인들은 현 자본주의의 왜곡으로 인한 인간 소외의 문제를 극복하여, ‘더 나은 사회, 더 좋은 삶’의 방향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인간의 사회적 성격을 잘 감안 한 ‘신 자본주의’ 이론을 만들어 지구의 항로와 나침반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지구촌을 이롭게 하자는 데에만 목표가 있지는 않다.

▢한국은 가장 심란한 나라다.

새로운 사상 정립은 한국이 더 급하다.

사회적 갈등과 분열의 최고 나라다.

타인을 가장 믿지 않는 나라다.

사회적 인간관계는 다 파괴되어 있다.

칭찬은 거의 없다. 다 까 부셔야 존재의 이유가 생기고 가치가 올라간다.

한국은 리퍼블릭 공화국이 아니다.

우리가 ‘共和’로 살자고 언제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코로나로 인한 국민 불편을 정부가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가.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당한 자영농을 얼마나 아파했는가. 참으로 무책임한 자들이다.

이제 다시 가장 자본주의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고 가장 기득권이 없는 자가 살기 어렵고 가장 공동체 심리가 왜곡되어, 가장 절망스러운 한국에서, 새로운 자본주의 이론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인간과 사물의 관계 왜곡은 상품의 질서와 권력의 힘에 의해 인간이 예속되었다.

삶과 생활의 파괴와 왜곡을 가져왔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왜곡은 착취를 극심하게 했다.

생존의 가치를 위협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 왜곡은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죽였다.

이제 결론은 나왔다.

지금 한국의 사회는 죽음의 사회다.

그래서 자살률 1위, 출산율 꼴찌 사회다.

“생활·생존·생명”을 죽이고 있다. 이제는 살림, 삶, 생명의 문화를 일으켜야 한다.

삶의 사회로 가기 위한 노력을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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