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기까지
명예회복을 향한 긴 여정(215쪽~217쪽)

이주연사무총장(안병하기념사업회)
이주연 사무총장(안병하기념사업회)

안병하의 명예회복은 살아 있는 가족의 몫이었다. 미망인 전임순이 남편의 명예회복에 나서게 된다. 남편 투병생활에 돈을 쏟아붓다 보니 큰 빚만 남았고 결국 단칸 셋방살이로 내몰리게 됐다. 물질적인 고통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5∙18의 진실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자식들에게 남편이 ‘무능한 존재’로 비쳐진다는 점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안병하를 근무지 이탈과 진압작전에 실패한 ‘무능한 지휘관’으로 치부했다. 광주학살극의 책임이 안 국장에게 있다는 식으로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광주의 진실’로부터 차단된 서울지역의 ‘냉담한 분위기’도 견디기 힘들었다. 고인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탄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하소연을 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유족들이 안 국장의 명예회복을 위해 치안본부, 보훈처 등 사방 온갖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누구하나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세상의 무관심에 상처받고 그 억울함이 한이 되었다.

“1989년 종합청사에 민원을 제기했다. 치안본부로 넘겼다. 치안본부에 찾아가니 보훈처로 가라고 했다. 보훈처는 공무원연금공단으로 보냈다. 연금공단은 다시 치안본부로 돌려보냈다.”

울분의 세월을 홀로 삭여야 했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간혹 연락하던 사람들도 발길이 뚝 끊겼다. 국회 5∙18 청문회는 1988년 11월 시작했지만 1월 26일과 27일 사이에 제4차 증인 청취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청문회가 중단된 상황에서 정부는 1989년 3월 대통령의 ‘광주문제 조기 치유’ 방침에 따라 ‘광주민주화운동 피해보상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야당은 청문회를 지속해야 한다며 법안 자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상태에서 1년이 흘렀다. 1989년 12월 31일, 전두환의 국회 증언 청취를 마지막으로 청문회는 더 이상 열리지 못한 채 유야무야돼버렸다.

정치상황도 어려워졌다. 1990년 1월 22일 ‘3당합당’ 선언으로 민정당(노태우), 민주당(김영삼), 공화당(김종필) 등이 민주자유당(이하 민자당)으로 몸집을 불렸다. 4.26 총선으로 만들어졌던 ‘여소야대’가 ‘여대야소’로 바뀌어버렸다. 언론에서는 3당합당이 정치적 야합이고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비난했지만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민당만 홀로 야당으로 남았다. 이때부터 5∙18은 여당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1990년 7월 14일 민자당은 야당과 광주시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주보상법안을 기습통과 시켜버렸다. 평민당은 반칙으로 통과된 광주보상법은 무효라며 헌법소원을 내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정부 독단으로 그해 8월 6일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고, 이에 근거하여 5∙18 피해자 보상을 강행했다. 야당은 정부가 진상규명은 덮어둔 채 돈으로 5∙18을 덮어버리려는 속셈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 항의하는 치열한 저항의 움직임이 대학가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듬해 1991년 5월 전남대생 박승희가 ‘5∙18 진상규명’을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이때부터 강경대, 김영균, 천세용, 박창수, 김기설, 윤용하, 이정순, 김철수, 정상순, 김귀정, 이진희, 석광수 등 13명의 젊은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분신자살을 이어갔다. 사상 초유의 분신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는 경찰과 정보기관을 앞세워 더욱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신공안정국’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현재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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