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조 대표(사실과 과학)
신광조 대표(사실과 과학)

望百의 나이에도 건강하시다. 청춘의 열정을 안고 있다.

한국 원자력 역사의 한 증인 이창건박사 이야기다.

현재 <원자력문화진흥원> 원장을 맡고 있다. 93세가 되었다. 일주일에 삼사일은 사무실에 출근하신다.

국내에선 원자력 發電이란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몇몇 뜻 맞는 과학도·공학도들과 함께 사실상 독학으로 원자력의 세계에 들어섰다.

그야말로 螢雪之功이었다.

우리 한국에 원자력 산업이 뿌리내리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눈물겹다.

이창건 박사를 비롯하여 김시환, 김재록, 김진현, 노재식, 노윤래, 신재인, 이광영, 이용수, 이익환, 이종훈, 이중재, 장문희, 장인순, 정근모, 조만, 채성기, 한영성 등 전국의 내 노라하는 수재들이 결과적으로 민족중흥을 위하여 가장 요긴하였던 원자력 분야에 뛰어들었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공부를 잘 하던 학생들은 법대나 상대 아니면 의대에 진학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들은 수학과 과학에 뛰어난 소질을 발휘하여 어느 대학 어떤 인기 과에도 진학할 수 있었음에도

당시만 해도 별로 알아주지 않던 생소한 분야를 마지막 인생의 진로에서 선택했다.

화학과나 기계과에 진학했다가 원자력 연구로 턴 한 분들이 많았다.

부모님이나 일가친척 등 주변에서는 무섭다고 말리기도 했으나, 가지 않는 길을 가기로 한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세상 어느일도 공짜는 없다. 점심 한끼도 공짜는 없다.

한국이 오늘날 세계 최강의 원자력 산업 경쟁력을 갖추게 된 데는 위에서 언급한 원자력 1세대 외에도, 생각만 해도 코끝이 시큰해져오는 이순신 장군을 꼭 닮은 애국자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처리된 핵연료를 수입하게 되면 우리는 언제나 강대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지한 박정희 대통령은 연료 국산화의 명령을 내린다.

이번에 폐쇄를 놓고 사달이 난 월성 원자력 1호기는 많은 사연을 갖고 있다.

원자력 발전에는 중수로와 경구로의 두 종류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총 24기의 원자로가 있는데 이번에 문제가 된 월성 1호기를 2, 3, 4호기는 중수로이고 나머지 모두는 경수로이다.

중수로에는 플루토늄과 3중 수소가 만들어지는 고준위 폐기물이 생산되고 경수로는 저준위 폐기물이 생산되어 핵무기를 만드는 원료는 없다.

월성 원자력에서 만들어진 핵 연료량은 약 8,000톤 정도로 회수율 70%를 감안하면 2차 세계대전 시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500,000만 개 만개 이상 만들 수 있는 7kg 플루토늄 탄을 생산할 수 있다.

플루토늄과 3중 수소는 수소폭탄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재료의 고가 물질로서, 전 세계에서 미국, 캐나다, 한국 3개국만이 생산할 수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 “한국에서 제발 하루빨리 없어져라!”하고 노래 부르는 물질이다.

여기서 잠깐! 평상시에는 야광시계를 만드는 등 극소량으로 산업적으로 요긴하게 쓰이나, 인체 건강에는 건강 위해요인이 안 되는(일 년 내 피폭당해도 멸치 반 마리 내지는 바나나 6개먹는 수준), 삼중 수소를 놓고 왜 그리 시 끌 사 끌 했는지 상상력을 동원해보기 바란다.

한국에서 삼중 수소를 싹 없애버리면 한국에서 원자폭탄 수소폭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지니, 탈핵론 자들은 심심치 않게 삼중 수소를 끄집어내서 논란을 일으키는 수법을 전략적으로 쓴다.

김정은이가 가장 싫어하는 이유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북한을 능가하는 수소폭탄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전 인민의 굶주림 속에서도 그렇게 매달리는 비대칭 전술무기의 우위가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북한은 한국이 그런 원재료를 가지고 있는 것이 늘 불만이다.

그것을 전부 폐기시켜 놓아야 큰소리를 칠 수가 있어서다.

■ 먼저 떠나가신 서경수 박사를 생각한다.

이 중수로의 핵연료를 국산화시키는 데는 서경수 박사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1980년 월성원전 건설 당시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의하여 월성 1호기 공사는 이루어졌으나 그 연료가 없으면 빈 깡통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자주국방의 의지가 강했던 박 대통령이 연료 국산화의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의 기술지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캐나다는 기술지도에 당시 300만$을 요구하였으니, 그만한 예산이 우리나라에 있을 턱이 없다. 턱 빠지게 웃는 수밖에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400,000$을 준비한 서경수 박사가 프론티어였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핵연료 국산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태평양 바다에 빠져 죽겠다.” 고 다짐을 하고 고국을 떠났다.

밤잠을 설쳐가며 연구한 결과, 마침내 핵연료의 국산화 기술 개발을 성공시켰다.

서 박사는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물봉이 밤새워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것처럼, 연구에 몰입한 탓인지, 51세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국 원자력 연구소에서는 그 업적을 기려 연구소 단지 내에 서 박사의 흉상을 세워놓고 지금도 업적을 기리고 있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에 크게 기여한 분들이 여러분 있으나, 서 박사는 그중에서도 혁혁한 분이다.

우리보다 원전의 안전성에 더 민감한 미국과 캐나다 등은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을 ‘40년 + 40년’으로, 총 80년을 사용하는 것을 일반화하고 있다.

우리는 불과 30년 만에 폐쇄시키려고 경제성을 조작하는 등 지신 발광을 한다.

상식과 양심, 애국심을 가지고 정상적인 판단력으로 살려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을 못잡아 먹어서 환장을 한다.

더하기 빼기를 할 줄 아는 분들은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80년을 쓰게 되어있는 원자력 발전소를 30년만 쓰고 버리려고 하니, 경제성조작을 안 하면 폐쇄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은 원자력계 선배분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한 과학의 금자탑이다.

한국은 세계에 내놓을 만하고 한국인의 밥이 되는 과학기술이 반도체, 휴대폰 등 몇몇 전자제품 그리고 원자력 외에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월성 1호기를 무려 7000억 원의 돈을 들여 거의 신품이나 다름없이 만들어두고도 그것을 탈원전 강펀치를 먹여 KO 시켜 놓고 있습니다.

월성원전의 폐쇄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것임에도 정치하는 자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합니다.

문재인 정권은 일부러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김정은의 비위에만 맞추려는지 월성원전 폐쇄에만

올인 해 버립니다.

오늘은 사실 2009년 이창건 박사께서 UAE에 원자력 발전소 4기 수출이 확정되던 날, 너무나 감격에 겨워 서울 동작구 국립묘지를 찾아가 네 대통령께 올린 술잔의 의미를 생각하며 글을 써볼 작정이었습니다.

50년 앞을 내다보시고 우리를 미국 아르곤 연구소에 유학 보내 준 이승만 할아버지에게 한 잔!

원자력으로 자주국방을 꿈꾸며, 산업발전 동력을 에너지로 보고 원자력 발전을 독려한 박 정희 대통령에게 또 한 잔!

주변의 탈 원전 건의를 이념에 취한 철없고 책임 없는 자들의 생각이라고 꾸짖으며 목포선언을 통해 원자력 발전을 지지했던 DJ에게 다시 한 잔!"

반 원전주의자들을 눈물이 펑펑 나게 꾸짖으며, “공부 좀 하세요! 우리 원전이 도심에 설치되어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원자력 안전관리기술이 세계 최고라는 말 아닙니까?”라고 정확히 원자력에 대해 감을 잡은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며 다시 또 한 잔! 글을 쓰려다가 잠시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세상일을 고민하면 그 일이 꿈에 나타납니다.

꿈속에서 SK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간부들이 심각하게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태양광 풍력들이 생산이 본격화되더니 전기료가 10.9%가 올라갔고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전기의 질이 안 좋아져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길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접수되어서였습니다.

저는 앞으로 2, 3년간만 더 탈원전 정책이 계속되면 이 나라 경제는 개 박살 난다고 봅니다.

전기 수요가 많은 디스플레이 등 제조업 온실 농업 등 산업계 전반이 회오리에 휩싸일 것입니다.

새벽 동이 트면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에 이슬 맺힌 백일홍”, 선창 한 곡 부르면서, <신 한울 3,4호기 건설공사 재개하라!> 목이 터져라 외치고 이리저리 거리를 누비며, 시위를 하러 가야겠습니다.

누가 ‘비도 안 내리는 데 머리가 좀 돈 놈’이라고 혀를 끌끌 차고 짠하게 보아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저의 평생의 철학이자 소신인 “행동하는 양심”을 쫓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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