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탈 원전 (원자력 죽이기)소동은 왜 우리나라에서만 이 난리일까요?

신광조 대표(사실과 과학)
신광조 대표(사실과 과학)

1. 한국 정치상황의 아슬아슬함

탈원전(원자력 죽이기) 정책은 전형적인 좌파정책입니다.

저는 다른 분들처럼 좌파와 우파의 우월성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을 나는 비행기의 양 날개로 봅니다.

절대적인 아닌 상대적인 개념이요, 더더군다나 선과 악의 이분법은 말도 안 되고, 타이밍의 문제, 적절성의 문제로 봅니다.

저 같으면 이번 좌파 정권은 보수적 성향의 인물을 정부 관료로 많이 기용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청와대에서 자주 할 법한 ‘장관·수석회의’에서 밤 낮 똑같은 사고 정향을 가진 인사들끼리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면 무슨 정책의 모순점들이 발견되고 조화롭고 균형된 정책이 나오겠습니까?

이번 문재인 정권은 완전한 아마추어 정권입니다.

그들이 정권 초기 내 세웠던 ‘적폐청산’은 당신들이 깔보는 최순실의 ‘창조경제’보다 20년은 뒤떨어진 구호입니다.

적폐청산은 좌파들이 자신들의 실력 없음을 감추기 위해, 늘 내세우는 초라한 캐치프레이즈입니다.

미래를 위해 할 일들이 아무 것도 안보이기 때문에, 과거 노트나 넘기며 자다가 봉창 뚫는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 할 일이 많고, 마음이 바쁜데 과거를 되돌아볼 시간이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이 사람을 골라 쓰려고 애썼던 분은, 삼고초려의 의미를 그나마 알았던 분은, 박정희와 전두환 대통령정도 입니다. 두 분은 군 경험 때문인지, 일은 사람에게서 시작 되어서 사람에게서 끝난다는 것을 잘 알았던 분입니다.

삼성이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전라도 경상도 출신을 가릴 틈이 없듯이, 이 나라를 진정으로 발전시킬 마음이 가득한 지도자라면 네 편 내 편을 가를 틈이 없습니다.

정치를 하는 능력의 반은 사람을 보는 능력입니다.

국민의 인기에는 눈을 감되, 사람을 보는 데 있어서는 매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과 ‘일을 다르게, 다른 일을 하여’ 국민에게 잘 해보이고 싶었습니다.

그 일의 대표선수가 ‘원전 없애기’ 정책입니다.

이런 일의 방식은 아주 잘 되거나 꽝입니다.

이런 리더 유형의 일이 잘 되려면 본인 능력이 출중하거나 뛰어난 인재가 포진해야 합니다.

이분은 가만 보니, 야당복과 정치복은 많고 일복과 사람복은 없는 분입니다.

누구 말도 잘 듣지 않지만, 더 자세히 보면 참모 중에 자기 직을 내걸고 쓴 소리 할 사람 하나 없습니다.

지지리도 인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별로 고수도 아닙니다.

그러면서 하수들에게 자신의 눈도 귀도 다 가려져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에 보면 趙高(기원전 257∼207)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형법에 능통한 진시황의 측근이었습니다.

그는 키도 크고 인물이 수려했다고 합니다. 그는 ‘홀로 아리랑’을 부르면 온갖 교언영색으로 황제의 마음을 샀습니다.

갖은 요설과 법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며 상대방의 약점을 만들었습니다.

趙 高는 자신의 권세를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2세 황제한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황제가 “이것은 사슴이 아닌가?”라고 묻자 주변의 신하들이 하나같이 조고의 눈치를 살피며 “말입니다" 라고 했답니다.

‘指鹿爲馬’ 고사가 탄생한 배경입니다.

조 국 씨는 가족 펀드를 가리켜 블라인드 펀드라고 불렀습니다. 민주당 사람들은 조국에게 찍힐 까봐 “가족이 했을 뿐 나는 모른다.”는 주장에 “자신만의 해석이다.” 는 말을 못 했습니다.

지록위마를 밝힐 유일한 자가 윤석열이었습니다.

윤석열은 원래는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후배들과 술 마시기나 다리를 다친 진돗개를 좋아하고 여인의 슬픈 눈매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존경했던 교수님의 아들입니다.

그는 머리가 아주 샤프하지는 않으나 “말은 말이고 사슴은 사슴이다” 는 말을 할 수 있는 충청도인의 용기와 의기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정치상황의 권력의 마취적인 맛에 길들여진 정치인들의 가짜 기운 ‘邪氣’와 내일 모가지가 짤 릴 지라도 정도를 지키겠다는 ‘精氣’와의 충돌입니다.

저는 강문영의 2nd 아버지 백운산은 아니어도, 윤석열의 눈빛과 추미애의 눈빛에서 그들의 속내를 다 알 수 있습니다.

■‘운동권 실세’에 둘러싸인 문 대통령의 치명적인 결함은?

저는 명함을 싫어하고 자신을 팔지 않으려고 해서 안 알려졌지,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운동권 출신 공무원이었습니다.

저는 누가 알아주든 말든 자나 깨나 시위를 했습니다.

이 사회의 모순을 고치는 데, 이 한 목숨 바치고 싶었습니다.

아마 시위에 가장 많이 참여를 한 사람은 저인지도 모릅니다.

보스나 고참 들은 다 현장을 피하고 배후로 숨던 때도 저는 현장을 지켰습니다.

저는 달리기를 정말 못하는 데 경찰이나 짭 새가 쫓아올 때는 비호같습니다.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도 고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길도 있을 수 있다고, 어찌어찌해서 들어서게 된 행정고시 2차 시험을 보기 전날에도, 그 뜨거운 여름날 모교의 백양로에서 데모를 했습니다.

제 답안지를 채점한 분들도 정신이 좀 나갔어나 봅니다. 안희정이가 남대전고 시절 광주 518의 진상을 알리는 삐라를 뿌리고 다녔다고 자랑하는 데,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매일매일 혁명을 꿈꾸고 박정희 정권에 타격을 가할 것만을 연구했었습니다.

제가 정치에 소질이 있거나 조금만 욕심을 부렸더라면 지금 광주 국회의원은 하고 있을 것입니다.

옛 민주화 운동 하던 분들의 무용담도 많이 듣고 배웠습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떠돌다가 85년 2월에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로 시작하는 개여울을 부르며 선거판에 뛰어들어 신한민주당 돌풍을 일으키는 기획을 해보았습니다.

그 때 서울 강서구에 출마하였던 김영배 선배로부터는 평생 화곡동 보신탕은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이용권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글로서 존경하였던 남재희 선배를 낙동강 오리알처럼 떨어뜨리게 하고는, 정치란 것이 참으로 무정하다는 것을 절감하였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정치를 못 하겠구나’ 마음먹은 계기가 됐습니다.

이철 선배가 경기고 학생복을 입고 유유히 도망 다니던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에게 “돌아온 사형수”타이틀을 붙여주며, 킬리만자로 표범 이미지의 빨간 점퍼도 입고 다니게 하여 성북구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는 데 혁혁한 기여를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의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선거 기획능력은 양정철이나 탁현민보다 몇 수 위인 듯합니다.

그 것 믿고 선거판에 한 번 뛰어 들어, 완전 쪽박을 찼지만. 전라도에서는 줄 잘 서야지, 능력이고 인격이고 나발이고 아무 필요 없습디다.

전라도가 발전이 뒤 쳐진 가장 큰 이유입니다.

또 풀빛 출판사를 운영하던 나병식 선배는 소주가 세 병이 넘어가자 “오메 오메 바르고도 예쁜 놈” 하며 제 귀를 어떻게나 세게 물어버리던지 제 한 쪽 귀가 떨어져 나간 줄 알았습니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문재인 정권에서 한 자리 하는 정치인들이나 장관들이 지난 여름에 어떤 사과를 훔쳐 먹었는지, 어디로 놀러 갔는지도 소상하게 아는 편입니다.

저는 운동권은 운동을 할 때, 그 순수한 마음을 영원히 지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운동권이 ‘특별한 사람이다.’ 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일찍 사회의식에 눈을 떴거나 행동지향성이 강하고, 희생정신과 나보다는 사회를 생각하는 이타적인 성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저도 한 때는 도서실에서 고시 공부나 하고 있는 선후배들을 보면서 ‘참 신간도 편한 사람들이다’고 경멸했습니다.

저는 바른 생각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었기에, 아무리 예쁘고 똑똑한 여학생이라도 시위에 적극 나서지 않는 이들에게는 눈길 한번 안 주었습니다.

여학생들도 가지가지였습니다.

어떤 여학생은 학교를 연애만 하러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가장 노트를 잘 정리한 사람은 시인 기형도와 저였습니다.

연애에 정신이 팔려있는 여학생일수록 학점에는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기형도와 저의 노트는 학교 앞 복사 집 단골 메뉴였습니다.

A 학점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하루는 연애 도사 여학생이 “선배님, 노트 좀 빌려 달라”기에,

“너는 왜 앵두같이 예쁜 네 입술을 진한 갈색 루즈로 가리고 다니느냐? 갈색 루즈는 애인에게 이별을 고백할 때 칠하고 나가는 것이란다. 갈색 여인이 되고 싶냐?” 고 핀잔을 주면서도, 마음이 약해 노트를 빌려주기도 하였습니다.

기억에 남는 여학생도 있습니다.

신방과에 다니던, 현재 MBC 국장으로 근무하는 이보영 국장입니다. 생머리 휘날리며, 하얀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고 백양로를 말처럼 달리던 여학생이었습니다.

제가 놀래 버린 것은 그토록 맹렬한 투사 여학생의 성적표였습니다. 올 A, 평점 4.0 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한번 잡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침이슬을 부를 때, ‘솔아 ,솔아’ 를 부르며 스크럼을 짜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그녀가 제 옆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MBC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한 것만 알고 소식을 모르다가, 신문에서 그녀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방송인에게는 상당히 큰 상이라는 ‘국제에미상(International Emmy Awards)' 예술 프로그램 부문에서, 다큐멘터리 ’안녕? 오케스트라'로 챔피언을 먹은 것입니다.

그녀는 수상 소감 인터뷰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게 감사하다.

그 아이들 덕분에 세상을 봤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혀 ‘과연 이보영이다’를 실감 나게 했습니다.

장미 꽃 백송이 보내주려 하다가 누구인지도 모를 것 같아 관뒀습니다.

뛰어난 글을 쓰던 신준영이도 기억에 남습니다.

말지 편집장을 지냈고, 지금도 재야에서 현실의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권력 곁에 가지 않고 자신의 할 일만 하고 있는 신준영이 우러러 보입니다.

운동권 출신들은 행동 지향이 강하고 적극적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보내다가도 다 제 갈 길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그들이 청춘의 푸른 꿈을 잃지 않고 세상에 산소를 더 많이 뿜어내는 소나무 이길 바랬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좀 틀리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같아졌습니다. 더 징헙니다.

안철수식으로 말하면 ‘실망입니다’.

나라와 정의에 헌신하기는커녕, 정권의 호위무사나 똘마니가 되어 말도 안 되는 언행을 보였습니다.

깡패나 조폭만도 못했습니다.

“우리 대장이 가만 안 둔다. 우리 대장도 성질 나불면 무섭다." 이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말을 창피한 줄 모르고 하고 있습디다.

우리가 그런 인간이 되려고, 사랑도 명에도 이름도 남김없이 다 버리고 운동을 했습니까?

전재용이는 어느 가을날 오후 백양로를 전속력으로 달려오더니 저에게 뜬금없이 물어봤습니다.

“선배님, 광주 518사태는 김일성 주체사상에 취한 전남대학생들이 일으킨 것이죠?”

“왜 그걸 나에게 물어보냐?”

“선배님이 그래도 생각이 깊은 광주 출신 운동권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 그런 것은 아니고 몇 가지 요인이 있지만, 공수부대원들의 무자비한 물푸레나무 곤봉 찍어 치기가 제일 크단다. 피를 보니까 서로 흥분한 것이지.”

“우리 아버지는 그런 일에는 절대로 관여 안 하였다고 합니다.

울 아버지는 꼭 대통령 되려고 해서 된 것도 아니랍니다.

어쩌다 보니까 대통령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답니다.

데모를 하는 광경을 보면 너무나 괴롭습니다."

" 네가 잘못한 것은 없으니 힘들게 생각하지 마라."

도서관 앞에서는 다시 시위가 시작되었다. 노래가 울려 퍼졌다.

“왜 찔렀지, 왜 쏘았지, 두부처럼 잘려 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 날이 다시 오면 나의 가슴에 붉은 피 솟네.”

나는 수많은 정치인을 만나봤지만, 같이 운동을 하고 싸웠지만, 그 순수한 정신을 잃지 않고,

정치인의 본령인 자신보다는 타인을 더 높은 곳보다는 더 낮은 곳을 지향하는 삶을 산 분은 떠나가신 김근태 선배와 장기표 선배밖에 뵙지 못했다.

두 분은 마음부터가 따뜻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사랑을 잃지 않았다.

떳떳했다. 당당했다.

다시 정치의 계절이 온다.

바른 마음을 갖고 예리한 지성이 있는 지도자를 갖는 다는 것은, 이 나라의 갈 길과 운명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내년 봄부터는 지난 85년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전국을 뛰어다니며 신한민주당 돌풍을 일으켰던 기억을 되살려, 좋은 정치인이 이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도록 서까래 한 장이라도 놓아야겠다.

저작권자 © 뉴스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