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 김성수와 고려대학교"2

신광조 대표(사실과 과학)
신광조 대표(사실과 과학)

■우리나라에서도 특징이 뚜렷한 여러 좋은 대학이 출현하여야 한다.

내가 서울대학을 못 나와서 그런지 서울대 일극 집중현상은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고 본다.

서울대와 경쟁하기도 하고, 인재 배출 창구를 다양화시키는 고려대 연세대 등 사립대학이 존재하여 한 역할을 맡아 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SKY만이 꼭 우수한 대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KAIST나 포항공대 등 과학기술 인재양성 우수대학도 있지만, 홍익대 미대 중앙대 국악과 같은 한 분야 우수대학도 꼭 필요하다.

개성있고 실력있는 대학이 많아져서 기쁘다.

그 들대학이 상상력 프론티어로서 세상을 다양화하고 인재의 힘을 키우고 있다.

일반 학문분야에서라도 서울대와 경쟁하면서도 서울대와 다른 색깔의 학풍을 갖고,서울대 학생들과는 다른 끼와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대학이 여럿 필요하다고 본다.

라이벌이 있다는 것은 쌍방 모두에게 행운이다.

경제학 분야에 서강학파 등이 있었듯이 여러 학문 분야에 학파가 생겨나야 한다.

전국의 부모와 학생들이 그리고 교수들이 최근들어 서울로 서울로 소위 In Seoul을 부르짖는 것을 보면서 부산 대구 광주 전주의 국립대학들이 서울의 사립 대학에게 크게 밀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지방에 뇌력이 사라지면 수도권 한 곳으로의 집중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7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부산대 상대가 서울대는 몰라도 연고대 상대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수도권 집중 현상 와중에, 대학마저 서울 소재의 대학들이 선두권을 싹쓸이하며 앞서게 된것은 국토균형발전을 저해하는 안타까운 현상이다.

대학의 수직적 서열화가 하루빨리 사라지고 분야별로 우수대학이 다양화 되는 것이 그렇지 않아도 큰 문제점인 한국 사회 획일성 개선의 첩경이다고 본다.

최근 학생들에 있어 SKY의 수준이나 성균관 한양 서강대의 수준이 별 차이가 없어졌다고하는 점은 큰 다행이다.

학생들 시험점수가 미세하게 낮은 중상위권 대학들도 일류대학이라고 불리는 학생들과 실력면에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만큼 상향 평등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동대 등 뚜렷한 교육관을 갖고 있는 학교도 흥미롭다.

지방대학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분발해야 한다. 수도권이냐 지방에 있는 대학이냐 구분을 따질 필요가 없게 되었으면 한다.

일본의 20여 노벨상 수상자들은 전국 곳곳의 여러 대학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전국적으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인재 배출이 이루어지다보니 인물 배출 어장이 폭넓고 깊어지는 것이다.

■어려운 재정 여건하에서 인촌이 인수한 보성전문 인촌이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 인수에 나선 것은 1932년이다.

1910년 우리 민족이 독립을 상실하는 굴욕을 당한 것은 결코 우리에게 애국심이 결핍했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보았다.

민족의 역량에 비해 침략세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까닭에 애국 정신은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지만 민족은 실제로 굴욕의 구렁텅이로 떨어져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1915년에 창립된 연희전문학교는 문과, 이과, 상과 세 학과로 출발하였다.

합리적, 민주적 인간을 양성하려는 서양 근세의 계몽정신을 따른 것이므로 연희전문학교는 창립자들이 의식적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처음부터 근대적, 도시적인 냄새를 풍기는 학교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보성전문학교의 경우에는 근대적이냐 전근대적이냐, 민주적이냐 봉건적이냐가 문제가 아니고, 오로지 '민족'이 문제였다.

민족이 살아남느냐 못하느냐는 '민족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뛰어들었던 것이다.

연전이 서구적, 도시적, 근대적인데 비해 보전이 토착적, 농촌적, 지사적 인상을 풍겼던 것은 단순히 설립자가 외국인이냐, 내국인이냐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촌은 민족의 정신적 뿌리인 유교에 바탕을 둔 전통문화 하나만으로는 급속한 국력배양에 도움이 안된다고 보았다.

장애물이 될지언정, 촉진제가 되지는 못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보전의 학풍은 처음에는 되도록 전통적인 것의 색채를 줄이려나선다.

초창기 보성 강사진은 아무도 민주주의를 입에 올려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강의하는 대륙계통의 법률학과 서구 근대경제학은 경국대전이나 개성상인의 부기술과는 관련이 덜 한 서구의 학문이었다.

보전은 나라에 써먹을 인재를 바로 길러내야 하기에 전통문화와는 대립관계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연전은 구미대학의 계보위에서 세워지고 또 구국등의 숨가쁜 실용 목적에 의하여 채찍질을 받지 않았던 만큼, 오히려 우리 전통문화에 대하여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주시경 등 국학자들이 처음부터 연전 교수진에 포함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가 우리들 자신보다 프랑스, 미국 등의 선교사에 의해 까맣게 앞서 시작되었던 배경과 비슷하기도 하다.

보전은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출발하였기에 민족을 앞세운 대학임에도 민족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틈도 여유도 없는 각박한 시절에 태어난 것이다.

■ 관학과 사학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관존 사상때문에 사학을 세워 인촌이 꿈꾸었던 최고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명문 사립대가 주도하는 미국 대학교육처럼 우리나라도 보전이나 연전이 관학을 추월하여 대학교육의 선두에 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려대 연세대 등 전통을 잡아가기 시작하던 사학은 운영주체가 확고하게 틀이 잡혀있었음에 반하여 새로 구성된 관학은 그러지를 못했다.

관학의 예산의 절대액은 사학보다 많았는지 모르지만, 그 운용이 제정법규에 얽매여 형식주의에 흐르고 탄력성이 부족하였다.

사학이 얼마 안되는 예산을 가지고도 비교적 활발하게 실험기재나 도서 등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관학은 그런 일에는 손도 못대고 오랫동안 겨우 교직원의 봉급이나 지불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해방 직후 한때 우리나라의 사학은 미국 영국 등의 명문 사학에는 비할 수 없어도 일본의 게이오대학이나 와세다 대학이 동경제대, 경도제대 등 관학에 대비해서 가지는 경쟁력보다는 높은 위치에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대학교육이 일본식인 서울대학교 등 국립대에 의해 주도되기보다는 영미식인 명문 사학들에 의해 달려나갈 수도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워낙 강한 관존, 관1류 민2류 사상에 의해 연세대나 고려대는 한국 대학교육을 민간베이스로 끌고 갈 절대적 위치까지는 오르지 못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명문사학이 대학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에 강점이 더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학에서 학문 연구의 자유로움을 높이 평가하는 인식변화가 있었더라면 한국 대학들의 서열판도는 다른 판으로 짜여져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됐든 고려대학과 연세대학의 출현은 모든 면에서 관료주의가 지배하던 이 나라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두 대학이 출현하지 않았더라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이 나라에 인재의 육성, 그러니까 다양한 개성과 창의성을 갖춘 인물의 확보에는 큰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저렇게 유일사상 체제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의 한 원인도 김일성 대학 등 몇 관립대학의 비중이 압도적이어서라고 본다.

고려대학교가 태어나지 안 했더라면 이 나라 발전을 이끌었거나 이끌고 있거나 이끌 인재의 상당수는 양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촌의 보전 인수의 꿈

진정으로 나라를 이끌거나 인류발전에 기여할 인재의 양성은 지능의 개발이나 지식의 축적에 있지 않다.

인격의 함양과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꿈의 크기에 달려있다.

미국 하버드나 예일대학의 신입생 선발의 가장 중요한 제일 요소는 SAT성적도 인턴경력도 논문 제일 저자 이력도 아니다. 그 학생이 얼마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이 쓰여질 꿈을 가졌고 그 꿈을 기필코 실천하려는 열정을 가졌는지 여부다.

세상의 승부는 큰 꿈, 자신의 출세나 명예가 아닌, 타인을 위해 자신이 하나도 남김없이 쓰여질 '꿈너머 꿈'을 가진 자를 탄생시키는가다.

인촌은 이 나라를 빛낼 아름다운 꿈으로 채워진 인재를 키우고 싶어 사재를 털었다.

인촌도 자신의 가장 큰 보람이자 생애 업적으로 본다.

인촌은 자신의 나라발전을 위한 못 다 이룬 꿈을 고려대에서 길러진 수많은 인재의 배출을 통해 대신 이루었다.

민족을 창학의 이념으로 내세운 학교는 고려대학교밖에 없다.

그렇다고 코스모폴리터니즘 사해동포주의를 외면한 것도 아니다.

인촌의 절대적 희생과 용기로 설립된 고려대학교의 후예들에 의해,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인촌을 자신의 주장관철에는 투철하나 타인의 처지나 상황은 한푼도 고려하지 않고 과격 파괴 사상에 물든 일븐 학생들에 의해 인촌의 흉상이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고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을 인촌이 떠난 6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바라보면서 한없는 비애와 삶의 허무를 느낀다.

**인촌의 고려대 사랑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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