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조 대표(사실과 과학)
신광조 대표(사실과 과학)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잘 못 알고 있거나, 잘 모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자기 마음대로 세상과 사람을 재단하여 버리는 사람입니다.

세상보다도 사람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소재도 없습니다.

우리는 ‘無骨好人’을 좋은 사람의 유형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충청도 사람들의 기질을 좋게 표현할 때 쓰기고 한답니다.

박 완서 소설가는 ‘줏대가 없이 두루뭉술하고 순하여 남의 비위를 다 맞추는 사람'의 뜻으로 씁니다.

‘목마른 계절’이라는 소설에서 “학생들은 순하고 총명한데 또 교장은 무골호인이라나. 그런대로 새로 부임한 김 선생은 견딜만한 모양이다.” 고 썼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무골호인을 좋아할지, 군자의 표상으로 볼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싫습니다.

세상을 살아보니, 그런 무골호인일수록 세상을 향해 별로 기여하는 바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처세술로는, 국회의원 당선되기로는 가장 유효하게 살아가는 기술임을 인정합니다만, 제가 편하고 잘되는 삶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저에게는 영 마땅치 않은 가르침입니다.

사람에 대한 평판과 실제 본질은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무골호인’일수록 자기에 대한 ‘안전 운행’의 욕구와 보신의 욕망이 강한 경우가 많습니다.

인생의 삶에서 성공이란 단어를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고 정의하여, 성공을 가장 성공적으로 정의하였다는 평가를 받는 랄프 왈도 에머슨의 ‘성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의 주제 구절인 '자신이 한 때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구절 앞에 아래 구절이 있습니다.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제가 여기서 주목하는 구절은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라는 9자입니다.

세상에 방구깨나 뀐다는 사람은 모두 다 비평을 하려 합니다.

정치인들도 비평을 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 맛에 삽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직한 비평은 매우 귀합니다.

방송국 앵커출신이라고 해서 대변인 직책이 맡겨진 한 국회의원이 추미애 법무장관의 아들을 안 중근 의사에 비유하는 것을 보고 “분노를 넘어 한심하고 불쌍한 인간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아픈데도 국방의 의무를 자발적으로 수행한다는 ‘살신성인’의 의지를, 서 일병에게서 발견한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지요. 서 일병이 애국심이 전무하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서 일병은 어머니의 정치가도에 행여 흠집이 생길까 봐 염려하여 군 복무를 선택한 것이지요.

그러다 가끔은 어쩌다 생각이 났겠지요.

어떻게 신체검사 잘 받아서 군에 차라리 오지 말 걸.

통역병 가는 것도 내 희망대로 안 되고, 남들은 꿀 빠는 시간인데 나는 뭣이여.

박성준의원, 나의 페북 친구지만, 안중근의사를 쉽게 들먹이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기 편 서 일병 살리기겠지요.

민심이 회오리를 일으키는 바람 소리를 들으십시오.

저는 사람들이 ‘자기편은 항상 옳고 남의 편은 언제나 틀리다.'는 그 가난하고 초라한 심리를 이해를 잘 못하겠습니다.

그러한 진영 논리는 조폭들의 지탱원리입니다.

자기편에게 잘 보이고, 비위 맞추고, 보스에게 눈도장 찍으려는 의도된 발언은 틀려 있을 때가 많고 헛다리 짚을 때가 다반사입니다.

숲의 진실은 산 위에 올라가야 보이지, 숲 안에 갇혀 있을 때는 안 보이는 법입니다.

전라도 사람들이 문재인 정권에 보내는 맹목적 무조건적 지지는 결코 문재인 정권의 장래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녕 사랑한다면 사랑의 회초리를 들어 매를 때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정치는 잠시는 편싸움이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누가 더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과 사람을 더 사랑하느냐는 긴 호흡의 승부입니다.

우리는 사람이면 누구나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성과를 내고 떠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특히 인적 물적 자원을 자기 부담으로 쓰지 않는 公職의 경우, 아무런 寄與 없이 월급에 보너스까지 타 먹는 생산성 0의 인간까지는 봐줄만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적어도 제가 보기에 상당수 많은 인간족속들은 0점이 아니라 마이너스 결과를 만들고도, 자신의 행위 결과가 무엇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출세도 하고 장관 국회의원을 합니다.

어디로 가버리든지 빨리 은퇴를 하면 좋겠는데, 그들은 살아가는 기술은 천재입니다.

그런 자들은 또 부지런하기까지 합니다.

나라가 망하는 경우는 무식하고 지혜롭지 못하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자들이 부지런 할 때입니다.

또 문제는 자기가 번 돈으로 세금을 내서 그들을 먹여 살리는 진짜 주인인 국민들은 그들의 못된 짓에 아무 관심이 없거나, 그들의 정치 공작 술에 세뇌되어 조종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분노를 잃어버린 우리의 오늘에 분노를 하여야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할 일에는 무관심하고 속고 속이고 정치적 데마고그나 프로퍼갠다 에는 열광하고 뛰어다닙니다.

정치 주인인 우리들은 자신이 직접 정치를 하지 않는 한 어느 정파에 예속될 필요가 없습니다.

감시견(Watching Dog)이 되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아야 합니다. 정직한 비평가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국민이 낸 세금으로 먹고 사는 정치인이나 행정을 하는 사람들 공작자가 이 나라발전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리라는 기대는 이미 접은 사람입니다.

정치인들은 말로는 국가를 걱정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제 일의 관심은 자기가 속한 정파의 승리밖에는 없습니다.

항상 자신들의 입장은 선이고 정의입니다.

정치가 그렇게 타인을 적으로 생각해서는 발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상대방을 미래의 희망을 견인하는 선의의 경쟁 라이벌로 인식해야 합니다.

국민을 먹여 살려야 할 밥인 그들이 국민을 밥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행정을 한다는 자들 공직자는 더 한심합니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밥값을 하려는 사람은 가뭄에 콩나물 찾기보다 귀합니다.

밥값 제대로 하는 분은 최재형 감사원장이나 몇 몇 햇빛도 안 드는 곳에서 소신 있게 일하는 이름모를 공무원밖에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장, 차관 등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은 정치권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출세가 삶의 과제이자 제일의 목표입니다.

하위직 공직자들은 시키는 대로만 합니다.

월급 꼬박꼬박 타서 아이들 가르치고 대과 없이 공직을 마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은 원래는 평생을 나라와 겨레를 위해 先公後私 공명정대한 삶을 산 인촌 김성수 선생을, 자신들의 정략적 주관적 판단과, 자신들만이 특별히 정의를 추구하고 사는 사람들로 착각하여 부관 참시한 역사좌파들의 민낯을 낱낱이 고발할 참이었습니다.

인촌 김성수 선생에 관한 글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환경 좌파들의 어처구니없는 망국의 탈원전 정책을 고발하겠습니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자신의 정파적 입장, 주관적 생각을 잠시 떠나, 저라는 작자가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정확히 비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원자력 발전은 다른 어떤 에너지원보다 경제성, 환경성에서 비교가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합니다.

그것은 석탄 300만분의 1로 같은 힘을 내는 우라늄 활용의,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과학적 원리 때문입니다.

원자력의 문제는 딱 한가지 입니다.

원자로에서 생성되는 물질이 외부로 누출되면 사람과 환경에 유해하다는 것입니다.

이 공포가 극대화 된 것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웃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입니다.

이 원전 사고가 일어나자, 그간 탈핵 운동을 주장했으나 결정적 증거 보여줌을 못 찾던 한국의 탈핵 운동가들은 물 만난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보아라! 사람이 수도 없이 죽었다고 하지 않느냐. 일본이 그럴 진데, 우리 한국에게도 금방 그 재앙이 찾아온다.”

이런 분위기에서 원자력이 환경에나 인체에 그리 유해하지 않다는 주장은 넋 나간 사람이라는 핀잔만 딱 듣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원자력 정책을 다루는 공무원, 장관 대통령까지 원자력 공포 분위기에 많은 국민들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부화뇌동하고 믿었습니다.

광우병이나 4대강 사업이 무엇이 진실인지, 가짜인지 모르게 분위기가 일변도로 흐르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연구열이 뛰어나고 분석력이 좋은, 물봉의 29회 행정고시 동기 최영대와 판단력이 좋은 물봉은 탈원전은 심각한 판단 오류라는 것을, 여러 문헌과 최근에 발표된 연구 논문, 실제 검증을 통하여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원자력 방사선에 대한 인체 위험성은 그 실험대상이 사람이기 때문에 쉽게 증명할 수가 없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악을 더 꽥꽥 소리 높여 지르는 자가 더 큰 호응을 얻기 쉽습니다.

또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묘한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판단이 보수적이고 자기가 아는 지식이라도 사회에 파란을 일으키는 발언을 몹시 조심합니다.

용감한 분이 없습니다.

아예 발언을 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학자 아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세상 철학과 주관적 가치관을 잘못된 세상 판단과 인식을 탈원전 정책으로 매조지 한 것입니다.

원자력을 전공했다고 현장에 있었다고 원자력 방사선의 위험성을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원자력 방사선이 위험하다고 하면 먹을 것이 생기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원자력이 위험하지 않다고 운동을 하면 좋아할 사람도 도와 줄 사람도 없습니다.

최영대 동지와 제가 원자력 방사선의 위험성이 과장 확대 왜곡되었다고 확신을 갖게 된 것은, 그 분야를 진짜로 연구한 핵의학 교수들의 논문을 통해서였습니다.

전 세계의 핵의학 전공 학자 모두가 현재 책정된 방사선 관리 기준은 터무니없이 불필요하게 엄격하게 정해진 것이라는 데 異論이 없었습니다.

그 분야는 실제로는 핵의학 연구교수들만이 알 수 있는 영역입니다.

다른 분들은 구경꾼이거나 어디서 얻어들었거나 전달받은 지식일 뿐입니다.

오리무중의 원자력 방사선 위험 여부 미지의 세상에서 히로시마 나가사끼 원폭 피해자들의 경험사례가 밝혀지면서 베일이 하나 둘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이 분야를 몇 십 년간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구한 외국의 저명 교수들은, 원자력 방사선은 "사고 등으로 특별히 잘 못 관리되어 그 성질이 돌변하지 않는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다"가 확실한 결론이었습니다.

몇 십 년 전에 미국 과학 아카데미에서 발표된 LNT 가설(문턱치 없는 방사선 위험이론)이 미국의 의학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이유로 그대로 믿는 과학자는 한국만이 태반이었습니다.

이런 판국에 한국은 과학자 아닌 일반 환경운동가가 과학자 전문가 행세를 하며 설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제가 먹고 있는 바나나 두 개에 든 세슘 137량과 똑같이 들어있는 고등어 한 마리를, 태평양 연안에서 잡혔다고 300년간 먹지 말라는 황당무계한 발언들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고, 국민들은 세뇌당해 믿고 있는 형편입니다.

전교조 교사, 전라도 사람들, 민주노총 관계자 등 좌파 성향이 강할수록 탈원전을 외치고 있으니, 이들을 이용해 정치적 승리와 표를 얻으려는 민주당은 알고도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탈원전 무당들과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습니다.

원자력 방사선에 관해 사실과 과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거의 전무하고, 괴담과 비과학적 인 정보는 만발해 있고, 그 와중에 두산 중공업 등 원자력 산업체와 수 많은 협력업체들은 도산하고, 원자력 전공 대학생들, 영문도 모르는 창원 시민 등 국토 동남권 기계공업 벨트 주민들은 다 망해가고 있고, 원자력 르네상스를 일으켜 전 세계 에너지 문제 해결의 강타자가 될 나의 조국 대한민국 비상의 기회는 날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위험한 계절에 저보고 가만있으라고 하실 수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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