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스물두살인 아들이 망막색소변성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망막색소변성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야맹증으로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면 망막에 존재하는 시세포에 이상이 생겨 적응하지 못하거나 불빛이 희미하거나 어두울 때 사물을 알아보기 어려운 현상으로, 서울 모병원에서는 31살쯤에는 시력를 잃을 수 있으니 주기적 관리와 관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었다.

이 병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중학교에 다닐 때 밤길에 자주 넘어져서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안경을 맞추어 주었다. 그런데도 그런 현상이 계속되어 주변사람들의 권유로 전대병원과 서울 큰 병원에 가서야 망막색소변성이라는 병명을 알게 되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아~ 어떻게 내 아이에게 이런 병을 갖고 태어났는가?” 원망도 많이 하였다. 특히, 유전의 원인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는 아이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늘 가슴 한 켠 자리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들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내가 걱정을 할 때마다 ‘아빠 의술이 발달이 되는데 곧 치료방법이 나 올 거야 걱정 마!’ 하면서 되래 나를 위로한다. 그러면서 ‘장애인 증명 발급받으면 주차도 편하게 할 수 있고 통행료도 할인을 받을 수 있다며 오히려 좋게 생각하자’며 말한다.

아들은 이 병으로 인해 군대에도 갈 수 없었다. 친구들은 군대를 가지만 자기는 안가니까 1년은 음악공부를 해야겠다며 새벽에는 마트에서 물건을 배달해 주는 알바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이제 21살이 되었으니, 안정된 직장을 잡아보길 권하고 공무원 시험에 봐볼 것을 권했지만, 전혀 공무원에 대한 생각은 하지를 않았다. 경쟁률이 너무 높고, 일 하기가 힘들고 고생만해서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본격적인 설득에 들어갔다. 경쟁률 부분은 장애인은 별도로 뽑으니 경쟁률이 낮고, 일이 힘들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무원이 하는 일에 대한 설명과 공무원의 국민을 위한 공복으로 사명감 보람을 강조를 하며 1년간의 설득 끝에 금년 초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시험을 앞둔 두 달 동안은 인터넷 강의를 듣고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밥 먹으면서 까지 공부를 하고 전 가족을 동원하여 시험문제를 내달라고 하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광주광역시 지방공무원 9급 행정(장애인) 시험을 보는 날, 나는 사무관 교육생 모임으로 제주도에 있는데, 당일 새벽 4시쯤 큰 딸이 울면서 전화가 걸려왔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와 있으며, 엄마는 시티 촬영을 하러 들어갔고, 딸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 전화만 받으며 상황을 이해하려는 나는 급히, 아들은 같이 차에 탔느냐고 묻자, 다행이 차를 타지 않고 집에서 자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상황을 정리하여 보니, 새벽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아이를 시험장에 데리고 가야하기에 마음이 급한 나머지, 백운동 교차로에서 신호를 위반하여 진입하다가 택시에 부디쳐 이런 어마어마한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나는 딸에게 아들에게는 교통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절대 말하지 말고 택시로 시험장에 가라고 당부했다. 시험 당일 아들은 교통사고 사실을 모른 체, 엄마가 갑자기 차를 태워주지 않는다며 투덜대며 택시를 타고 시험장에 갔다. 시험이 끝나고 아들은 교통사고 사실을 알고 바로 병원으로 와서 엄마와 눈물의 상봉을 하며 시험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지금은 모두들 건강하다.

그리고 어제 지방직 합격자 발표 날이다. 아들의 시험번호가 합격자 명단에 올라 있다. 아들은 망막색소변성의 병으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지방직 공무원 필기시험에 합격했으니 네가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했기에 합격했다고 말한다. ‘불성무물(不誠無物 : 정성은 모든 사물의 근본이므로 정성이 없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의 생활신조를 설명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아이에게 중용의 한 구절을 되뇌이며 다음 달에 있을 2차 시험에 합격한다면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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