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晋州 鳳山祠, 高句麗 兵馬都元帥 姜以式 將軍 春享祭 奉行(姜以式 將軍 戰功『朝鮮上古史』, 중국 Bai du(百度)百科에서 再發見)
  • 강진원기자
  • 승인 2016.04.1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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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산문 춘향제 현수막     ©편집국

2016년 4월 16일(토). 오전 11시 경남 진주시 상봉동885(상봉서동) 소재 봉산사 경내에서 한국 6대 명문씨족 진주강씨 후손 중앙종회 강석성 상임부회장 등 200여명의 후손이 참석한 가운데 고구려 후기 최고문관직인 대모달(大模達)로 고구려-수 전쟁(高句麗-隋 戰爭) 또는 여수전쟁(麗隋戰爭) 영웅인 兵馬都元帥 姜以式 將軍의 춘향제례가 봉행되었다. 

丙申年 春享祭 祭官 分榜은 初獻官, 亞獻官, 終獻官, 典祀官, 執禮, 大祝, 謁者, 奉香, 奉爐, 封爵, 司尊으로 정하여 유림의 집회·제례 등 의식에서 그 진행 순서를 적어서 낭독하게 하는 기록인 홀기(笏記)에 의거 전통 제례 절차에 따라 경건하고 엄숙하게 봉행되었다.

▲ 헌관과 제례참석자 기립     ©편집국

제례종료 후 중앙종회 강석성 상임부회장은 강현송 회장을 대신한 인사말에서 󰡒국내 원근 각지에서 춘향제에 참석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경남 진주시 동산면 진성리 산 10-1에 진주강씨 130만 여명 후손의 뜻을 모아 8,000평(26,446㎡) 대지의 광대한 묘역위에 문무관․기마상․동상․제단․대형 공원등을 조성하여 자손만대에 전할 「강이식 장군 역사공원」사업을 추진중에 있으니 동 사업비 성금운동에 적극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

 

오늘 오후 비가 내린다는 기상예보가 있어 내빈 소개는 생략하고, 바로 제례참석자 기념사진 촬영이 있었고, 이어서 참석자들의 점심식사를 한 후 행사를 마치었다.

 

오늘 행사는 봉산사 정문 접수대에서 방명록과 향촉대 접수는 강신백 시도종회협의회장, 제례 참석자들의 차와 식사 제공 봉사는 강씨 종중 진주시 청년회와 부녀회에서 수고를 해주었다.

▲ 춘향제 참석자 단체기념사진     ©편집국

한편 오늘 춘향제를 봉행한 고구려-수 전쟁(高句麗-隋 戰爭) 또는 여수전쟁(麗隋戰爭) 영웅인 兵馬都元帥 姜以式 將軍의 공적에 대하여 살펴보면, 『韓國 역사속의 中國 事大主義 歷史觀 ′春秋筆法′』의 피해자로 고구려 正史에서 사라진 『고구려 명장 병마도원수 강이식 장군』史蹟이 천오백여년 만에 역사의 수레바퀴 위로 부상하고 있다.

 

구 한말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주의 역사학자 丹齋 申采浩(1880년 12월 6일 ~ 1936년 2월 21일)이 1918년 저술한 『朝鮮上古史』 ‘제1권 제10편 고구려와 隋의 전쟁(P272~ P290’ 에 의하면 서기 597년말(고구려 제26대 영양왕 8년) 위진남북조시대 중국을 통일한 隋나라(서기 581년~618년)가 통일후 국력을 과시하면서 고구려에 항복을 요구하는 모욕적인 국서를 보내오자 강이식 장군은 왕에게 ′칼로서 응답하자′며 무력으로 맞설 것을 주장하여 마침내 양국가간 麗隋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筆者 姜珍遠이 현존 중국 최대 최고의 백과사전인 Bai du 百科(百度百科) 인터넷주소 http://baike.baidu.com/를 2015년 10월 29일 ‘隋与高丽的战争(번역 : 수나라와 고구려의 전쟁)’ 검색한 결과에 의하면 수나라는 고구려(고려: 중국 지방정권)간 전쟁은 598년(제1차), 612년(제2차), 613년(제3차), 614년(제4차) 전쟁을 했다.

 

「朝鮮上古史」 ‘제2권 제10편 고구려와 隋의 전쟁(P272~ P290’ 에 의하면「고구려 제26대 영양왕에 의거 고구려후기 최고 무관직인 大模達 姜以式 將軍이 兵馬(都)元帥에 발탁되여 수(隋)나라의 고구려(高句麗) 침입내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수(隋)나라 1차 침입은 서기(西紀) 597年末 수(隋)나라 30만대군(萬大軍)을 수(隋)나라 한왕(漢王) 양양(楊諒:수나라 제후)으로 행군대총관(行軍大總管)을 삼고, 주나후(周羅喉)로 수군총관(水軍總管)을 삼아 만주 요서 지방 임유관(臨渝關 : 현 산해관의 남서 지역)으로침입하였다가 서기(西紀) 598년 6월 패퇴하였다.

 

수(隋)나라 2차 침입은수양제(隋煬帝)가 친정(親征)하여 총 24군단 113만 3천 8백명 대군(大軍)을편성 고구려(高句麗)로 침입하였는데 11군단 72만 6천 1백명이 양제(煬帝)의 직접 인솔하에 요동지방을 침공하였고, 9군단 30만 7천 7백명은 사령관 우문술, 참모 우중문 인솔하에 고구려의 서울 평양을 침공해 들어왔으며, 4군단 10만명이 수군총관 내호아와 수군부총관주법상의 인솔로 서기 612년 대동강(패강 : 浿江))으로 양곡 수송겸 평양을 침공하였으나, 고구려는 상비군 30만명을 총동원하여 병마도원수 강이식은 요동(遼東) 오열흘(烏列忽) 전쟁, 육군원수 을지문덕은 청천강 살수(薩水)전쟁(30만 5천명 사망, 2,700명 도주), 수군원수 건무장군(후일 영류왕)은 대동강 패강(浿江)전쟁에서 隋나라 대군은 모두 패퇴하여 서기 613년 본국으로 퇴각하였다. 수나라 2차 침입 전쟁 3개 전쟁을 모두 통틀어 살수대첩(薩水大捷)이라고 일컫는데, 으뜸가는 功은 패강(浿江)전쟁이고, 다음은 살수(薩水)전쟁이고, 마지막은 오열흘(烏列忽) 전쟁인데, 살수대첩(薩水大捷)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지 않지마는 , 오랜 동안 씌어온 것이므로 그대로 쓴다고 기록하고 있다.

 

봉산사는 AD 950년 고려 광종 1년 장군의 구국충절을 기려 봉산사를 건립하고 매년 한식날을 기해 제사를 모시게 했다. AD 1570년 선조 3년에 사당을 창건하고, 봉강이라고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AD 1714년 숙종 40년 사당이 중건되었다가, 고종 8년 서원철폐령으로 통폐합되었다가 1975년 9월 11일 진주시 상봉서동에 위치한 진주강씨 시조 사당인 봉산사(鳳山祠) 건립에 총공사비의 3분의 2에 달하는 일본화폐 3억엔을 쾌척하고, 경향 각지 뿐만 아니라 일본 거주 종친들까지 뜻을 모아 쇠락(衰落)해가는 봉산사를 1983년 12월 20일 준공하였다. 호산 강계중 선생은 이런 거금을 쾌척하시고도 1983년 양력 8월 21일 별세 하시어 봉산사 준공을 보지 못하셨다.강이식 시조님 봄제사는 매년 음력 3월 10일 모셔오고 있다.

강진원기자  kjw5310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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