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종교개혁운동 필요할때”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지 1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독교는 일제치하에서는 애국운동,
광복 이후에는 근대화운동을 주도하며 시대의 선각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1200만명의 크리스천들이 살고 있는 현재 ‘제2의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교계 정치가 금권에 좌우되고 무자격 목회자가 양산되며 비성경적인 관행과
타성에 젖어있는 지금의 한국교회 상황은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중세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무기력한 교회인을 양산했지만
투철한 신앙인을 길러내는 데는 실패했다는 뼈있는 비판을 이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박종화(경동교회) 목사는 “성도들이 생활속의 예언자로 활동하지 못하는 것과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며 “생활속의 거듭남 즉,종교개혁
및 갱신운동이 한국교회에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개혁운동은 기도와 영성으로 교회를 변화시키는 부흥운동으로 승화돼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기독인들이 극복해야 할 것들이 있다.
이기주의,권위주의,물질주의,이분법적 사고와 신앙생활과 생활의 불일치,도덕성 부재,
개교회주의,사회적 무관심 등이 교회 성장의 둔화보다 더 우려해야 할 문제들이다.

이기주의=새 신자들이 교회를 등지는 이유 중 하나는 성도들이 위선적이고
불친절하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웃지만 마음을 열지 않고 친절하게 영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직하지 않으며 이방인에 대한 경계 심리가
새 신자들에게 느껴질 때 한두번 오던 새 신자들은 마침내 교회를 떠나게 된다.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환영합니다’고 새 신자 환영의 노래를 부르면서 박수를 치지만
내부적으로는 자신들만의 그룹을 주장하고 새 신자를 거부하는 교회도 있다.
기존 신자는 비신자나 새 신자들이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모델이다.
보이지 않는 예수를 보이는 신자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신자는 교회를 방문하는 새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참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권위주의=일부 교회에서는 리더가 주(主)이고 조직과 구성원은 종(從)인 경우가 많다.
또 목회자 중에는 군림형이 많다. 이런 전제형 리더십은 겉으로는 매우 강해 보이지만
사실상 리더십 부족으로 인한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지도층의 의사가 교회내 조직과 일반 성도에게 잘 전파되고 산하 조직들이 유기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성도가 지도층에 의사를 쉽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권위주의적 사고가 실생활에 전이될 때 비신자들이 교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를 동역자로 섬겨야 하며
쌍방 커뮤니케이션으로 평신도들을 목회현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물질주의=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교회 성장 속도 못지 않게 빨라
개개인에게 윤택한 생활을 가져다준 반면 지나친 물질만능주의를 심어줬다.
모든 인간관계에 물질이 우선하게 됨으로써 교회에서도 권위주의와 계층별 위화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새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교회가 사람보다는 돈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새 신자가 교회에 찾아올 때 천하보다 귀한 영혼으로 보느냐,
아니면 교회 성장을 위한 숫자나 혹은 교회 재정 수단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상고할 가치도 없다.그러나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교회에서 이 점에 대해
의심스러운 경우가 있다. 최근 헌금을 강요하거나 교회건축 등으로 재정 부담을
주는 교회에서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분법적 사고(신앙과 생활의 불일치)=이분법적 사고는 기독교의 높은 도덕성과
윤리성을 함께 무너뜨린다.
이는 신행일치의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증거다.
교회가 성도를 지나치게 이론적으로만 훈련을 시켰거나 성도를 인격적 신앙적으로
성숙시키지 않고 단지 교세 확장 요원으로 양성하지 않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심각한 문제다.

이런 형식주의는 주일성수의 정신보다 주일성수 자체를,
십일조의 정신보다는 십일조 행위 자체를,하나님 공경이나 사랑의 실천 여부보다
금주와 금연,제사 지낼 때 절 안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하고 있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 아래서는 성도가 현실을 도피하거나 타협해 버림으로써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하고 이중적인 처세를 하게 된다.

도덕성 부재=기독교 윤리학자들은 ‘기독인이 된다는 것은 곧
정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이는 하나님께 정직할 뿐 아니라 자신과 세상에서도 철저하게 정직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는 정직하고 의롭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세상에서는 거짓말하고
불법,불의와 타협하며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세상 속에서도 정직하게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이 복음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그릇된 길을 걸으며
비리와 불법을 저지르고 부도덕한 행태를 벌일 수는 없다.

개교회주의=교회들은 하나의 지체로 동업자이지 경쟁자가 아니다.
많은 교회가 마치 기업들처럼 서로 경쟁의식을 갖는 건 잘못된 일이다.
개교회가 교회내의 각 기관을 통솔하기 위해 ‘지체’를 강조하면서도 역시
한 지체인 개교회들이 연합하고 협력하지 못하고 서로 경쟁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 성도는 알게 모르게 ‘개교회주의’라는 이기주의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협력은 시너지를 이뤄낸다.
교회들이 서로 형제교회라는 걸 인식한다면 당연히 이웃의 어려운 교회를 도와야 하고
교회 운영과 관련된 여러 가지 성공 및 실패 사례를 당연히 공유해야 한다.

사회의 무관심=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도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이윤을 적극 환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 구원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 교회는 어떠한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무관심한 교회,지역사회에 관심을 갖지 못한 교회,
도덕적 윤리적으로 기대할 만한 가치관을 지니지 못한 교회는
성도가 아무리 많아 봐야 지역사회에 좋을 게 없다.
교회가 지닌 물질 문화 가치관을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을 때
교회는 비로소 영향력을 갖게 되며 지역사회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게 될 것이다.


출처 : 다음카페,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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