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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원 칼럼】20대 국회가 풀어야 할 미완의 과거사 정리- 건국절 논란은 두 차례 과거사 청산 반민특위, 진실화해위 미 청산 반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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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7.0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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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원칼럼리스트     ©편집국

친일 미청산과 친일파 후손들이 사회의 기득권을 좌지우지 하는 나라, 대한민국 법통이 1919년 3.1 운동 이후 4.13 임정수립일인데, 사회 기득권층의 말대로 1948.8.15일이 건국절 이라면, 1919.4.13.~1948.8.15.까지 친일파의 매국행위는 역사속의 정당한 애국행위에 해당되고, 이 기간 중 국권회복을 위하여 독립운동을 한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만주․러시아 연해주지역 독립군․미국과 일본 거주 독립 운동가․ 3.1운동 독립 운동가는 모두 역사속의 반란군에 해당된다. 더욱이 1948.8.15. 친일파들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관여자는 건국공신이 된다.

 

오늘날 유력 정치인들이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면서 이런 말이 되지 않는 파렴치한 행위를 벌이는 것은 그들의 조부모가 대부분 일제 때 친일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시절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한승수)라는 단체가 있어 위원장은 한승수 국무총리, 현승종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김남조 숙명여대 명예교수이다.

 

2008년 5월 22일 출범해 2009년 공식웹사이트가 개설 되었으나 대한민국건국기념일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논란이 발생함으로 인하여, 얼마 못가 사이트는 모두 폐쇄되었다. 결국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2013년 1월에 훈령은 폐지되었다.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면서 이런 말이 되지 않는 파렴치한 행위를 벌이는 것은 그들의 조부모가 대부분 일제 때 친일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 세계를 파멸로 몰아 넣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이후 전후 처리문제에 가해국 독일정부의 전쟁 피해국가에 진솔한 사과와 배상을 칭찬하고, 가해국 일본의 피해국에 대한 사고와 배상 거부, 전범과 피해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삼배, 위안부 망언과 미배상 등 일본의 파렴치한 행위로 국제사회와 아시아 각국, 우리 국내에서 모두 한결같이 국제규범을 들어 규탄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는 친일 청산과 과거사 정리가 미완의 역사이다.

 

1945년 8.15 일제 해방이후 친일청산과 과거사 정리 노력은 두 차례가 있었다.

 

먼저, 1948년 9월, 일제 시대에 반민족적 행위를 하였던 친일 민족 반역자를 처벌하기 위해 '반민족 행위 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에 따라 국회의원 10명으로 반민특위가 구성되었다. 아울러 특별 재판부를 두어 반민족 행위자들을 재판하게 하였다.

 

대한민국의 민족정기와 국민정신을 되살리고 사리사욕 때문에 민족을 파는 반역자가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교훈적 의의가 큰 반민특위 위원회는 4개월 동안 300여 명을 반민족 행위자로 체포하였다.

 

그러나 이승만과 친일파들은 법률 제정과 조사 위원회의 활동을 끈질기게 방해하였다. 결국 1949년 8월,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 해체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반민특위는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해산되고 말았다.

 

두 번째, 일제 강점기부터 제6공화국까지 약 100년의 과거사를 조사하여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돕고, 가해자에게는 감형 등 법적ㆍ정치적 화해 조처를 건의하는 국가기구로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5년 12월 1일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공식 발족했다.

 

대통령 직속의 독립기관으로 설치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항일 독립운동과 반민주적ㆍ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사건 등의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상을 최장 6년 동안 조사할 수 있다. 위원회는 15명(국회 선출 8명, 대통령 지명 4명, 대법원장 지명 3명)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의 임기는 2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활동기한은 4년(1회에 한해 2년 연장 가능)이다.

 

위원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진실규명 조사대상에 따라 제1소위원회, 제2소위원회, 제3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상임위원 3인이 소위원장을 맡게 하고, 화해조치에 관한 사항을 처리하기 위해 화해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였다.

 

또한 위원회의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사무처를 두고, 그 하부조직으로 3개의 조사국을 비롯한 4국 2관 7과 9팀 1실을 설치하였다.

 

위원회는 어느 부처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된 위원회로서, 진실을 규명한 후 피해와 명예회복 조치 및 가해자와 피해자 간 화해를 권유한다.

 

위원회는 2005년 12월 1일부터 2006년 11월 30일까지 1년 동안 신청된 진실규명사건 10,860건에 대해 2006년 4월 25일 첫 조사를 개시하여 2010년 6월 30일까지 약 4년 2개월 만에 조사를 완료하였다.

 

위원회는 이 기간 동안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하여 문헌자료 조사, 신청인과 참고인에 대한 진술조사와 사건 발생 현장 조사 등 실지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뒤 결과를 조사보고서로 작성하여 각 소위원회와 전원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쳤고, 이렇게 확정된 건은 발간하여 국회 및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공개하였다. 또한 진실규명 결정된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가 공식 사과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국가에 권고하였다.

 

그 밖에도 위원회는 한국전쟁기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과 관련하여 2006년부터 4년 동안 전국 13곳에 대한 유해발굴을 통해 1,617여 구의 유해와 6,020여 점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위원회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전후,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수립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절까지 항일독립운동과 민간인 집단희생, 간첩조작, 해외동포관련사건 등의 진상을 규명해 역사적 진실을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우리 현대사 전반의 반민주적·반인권적 사건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정사건이나 특정조직에 국한된 조사활동을 했던 여타의 과거사 관련 위원회와 구별된다.

 

이렇게 어느정도 정리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 『친일청산과 과거사 정리』는 다시 우리나라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시절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한승수)가 2008년 5월 22일 출범해 2009년 공식웹사이트가 개설 되었으나 대한민국건국기념일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논란이 발생함으로 인하여, 얼마 못가 사이트는 모두 폐쇄되었다. 결국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2013년 1월에 훈령은 폐지되었다.

 

이는 반민특위와 진실화해위원회의 두차례 과거사정리가 제대로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대한민국사회의 저변에는 아직도 유력 정치인, 사회 기득권층 상당수가 그들의 조부모와 부모가 일제 때 친일파이기 때문에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잠재되어있는 사회 영구 지배욕구가 일시적으로 표출되었다가 민주화시대에 뇌관을 잘 못 건드려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을 뿐이지만 그들은 언제라도 기회만 되면 다시 수면위로 튀어 나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2016.4.13. 제20대 국회 총선 개표결과를 보면 총 300석,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무소속 11석, 정의당 6석이 었다.

 

제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고. 야권은 16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를 이뤄냈다. 20년 만에 3당 체제로 지금까지 한국 정치는 최근 16년 동안 여당에 의한 일방 독주에서 협치 국회의 시대를 맞하하게 되었다.

 

이런 협치 정치 지형도 아래에서 제20대 국회가 미완의 『친일청산과 과거사 정리』를 꼭 완전하게 청산 정리 해주었으면 한다.

편집국  newswin7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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